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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쇼퍼홀릭

제모 도전기, 아픈만큼 성숙해지려니.

by MY STYLE 2009.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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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모 도전기

6월이 오기 전에 몸매 관리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면, 이젠 제모에 신경 쓸 때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제모.

경제적인 면과 고통의 정도, 편리성을 고려해 3곳의 장소에서 각각 최선의 방법으로 도전해봤다.



+ 조금 아파도 상관없어 에디터는 유전적으로 몸에 털이 별로 없는 편이다.

엄마도 그렇고 심지어 남동생도 그렇다. 그런데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눈썹 칼로 다리털을 미는 게 너무 좋아 보이는 거다.
그 친구들은 털을 밀면 피부도 부드러워지고 다리도 더 가늘어 보인다는 몹쓸 확신을 갖고 나를 유혹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급격도로 굵어진 털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면도기를 사용해야 했고, 그것마저 서투른 터라 상처투성이의 다리가 되었다. 대학교 때는 용돈을 모아 제모기를 마련했다.

모근까지 제거되기 때문에 2~3주마다 한 번씩 사용했는데, 시간이 흘러도 털이 한 올씩 뽑혀져 나갈 때의 고통은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번에 뷰티 랩에서 제모를 하기로 결정하자, 영구적으로 털을 없앨 수 있는 레이저 시술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몇 달 전 먼저 시술을 받은 선배의 추천을 받아 리더스피부과 압구정점을 예약했다.

고급 에스테틱처럼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되어 있다고 하니, 민망하게 옆 베드에 누운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일은 없을 듯해서다. 선배의 말처럼 이 피부과는 다른 환자와 전혀 마주칠 수 없도록 공간이 철저히 구분되어 있었다.

베드에 눕자 종아리 전체에 마취 연고를 바르고 랩을 씌웠다. 40분 정도 지나고 촉촉한 스펀지로 연고를 깨끗이 닦아낸 후 본격적으로 레이저 시술을 받는 방으로 이동했다.

차가운 젤을 살짝 바른 후 그 위에 레이저를 쏘는데, 처음에는 ‘이게 정말 마취가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따끔거렸다. 시술은 15분 정도로 고통이 익숙해질 때쯤 끝났다.

일주일이 지났는데, 아직 털이 전혀 올라오지 않는다. 2주 정도 지나면 가는 털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고 한다. 6주 간격으로 4~5회 시술을 받으면 털과 완전히 이별하게 되는 셈인데, 비용은 1회에 25만원 정도로 부위가 넓기 때문에 겨드랑이 시술보다는 가격대가 높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15년간 매주 욕실에서 다리에 상처를 내며 (심지어 피가 나기까지) 면도한 것을 생각하면 억울해질 정도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조금 덜 아픈 레이저가 개발된다면 최고일 듯한데, 뭐 예뻐진다는데 조금 아픈 게 대수겠는가. 

정수현 리더스피부과 압구정점 종아리 레이저 제모 25만원대.



+ 당신은 모르실 거야 평생 제모를 걱정해본 적이 없다.

원래 털이 많지도 않거니와 반바지나 민소매 티셔츠를 거의 입지 않아서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제모라니. 처음의 고민은 ‘과연 어느 곳의 털을 뽑아야 할까’였다. 전기 제모기 사용법을 이론적으로나마 완벽하게 터득할 때까지도 결정을 못하다가 그래도 다리가 덜 아프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다리에 시원한 아이스 쿨러를 갖다 댔다.

거세게 돌아가는 제모기의 ‘위잉’ 소리는 난생 처음 다리에서 떨어져 나갈 위기에 처한 다리털을 가엽게 보던 나를 겁먹게 했다. 신중을 기하며 조심스럽게 갖다 댄 제모기는 내 마음도 모르고 꽤나 많은 가닥의 털을 뽑아버렸다. 아팠다. 분명 ‘게이’일 거라며 쑥덕거리던 사람들에게 질린 2006년의 겨울 이후 처음으로 직업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아이스 쿨러가 분명 피부 자극을 줄여준다고 했지만 이론과 실제는 달랐다. 판단 착오라고 자위하며 제모기를 겨드랑이로 옮겼다. 기본적으로 털이 짧아야 한다기에 함께 들어 있는 트리머로 털을 다듬은 후, 두 번째 위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겨드랑이는 의외로 민감해 아이스 쿨러를 갖다 대기도 힘들었다.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느냐는 생각에 힘껏 갖다 댔고, 처음 한 가닥이 뽑힐 때부터 나 자신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다리보다 더 아팠다. 비록 남자의 털이 여자의 그것보다 굵고, 많기는 하겠지만 이건 아파도 너무 아팠다.

하지만 멈추기엔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 중간까지 뽑은 이상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 모습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추잡한 모습이었으니까.

다행히도 마무리할 때쯤엔 고통에 익숙해진 건지, 제모기를 다루는 기술이 늘어서인지 덜 아팠다. 말끔해진 왼쪽 겨드랑이는 민망해서 그렇지 깔끔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털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뽑는 건 불가능했다. 아파서가 아니라 하나하나 세세하게 뽑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량의 털을 쉽고 빠르게(차마 아프지 않다는 말은 못하겠다) 뽑을 수는 있지만 원하는 극소의 부위만 골라 뽑을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머리에서 나는 새치 외에 몸에서 난 털을 뽑는다는 건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기에 체험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 상황 자체가 달갑지 않았고, 그래서 뽑기도 전에 이미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면 아프다고 불만만 늘어놓을 때는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전기 제모기는 10만원대 가격으로 털이 더 이상 나지 않을 때까지 뽑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쓰다보면 적응이 돼 고통도 덜하다. 아픈 만큼 깔끔해진 왼쪽 겨드랑이를 보고 있자니 오른쪽이 왠지 지저분해 보인다.

두 번째 고민이 날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반대쪽 겨드랑이는 어떡하지?’

황민영 필립스의 사티넬 아이스 프리미엄 HP 6518 10만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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